몇일간 전국 아니 세계가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기 때문인데요. 여객선이 침몰하면 인명피해가 일어나는건 어떻게보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지만 세월호의경우 선장의 어처구니없는 대처와 정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듯 합니다. 정부의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을 삼가하겠구요.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침몰하면서 왜이렇게 많은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한건지에 대해서 포스팅해볼까합니다. 덧붙여서 과거 타이타닉호나 콩코르디아호 같은 초호화여객선들이 침몰했을때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세월호?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에 소속된 6835t급(천안함 약 5배) 정기 여객선입니다. 엄청난 크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고 실제로 이번사건처럼 수학여행같은 학교행사를하게 되면 모든학생을 한배에 다 태울 수 있으니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 여객선은 재미난 사실이 있는데바로 일본에서 건조된 배라는겁니다. 1994년 6월에 일본 나가사키네 선거에서 건조되어서 18년동안 일본해역을 수천 수만번 거친후에 청해진해운이 중고로 도입을 하게 됩니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만큼 사람을 태울시 약 900명~1000명정도를 태울 수 있다고하며, 차량은 약 200대이상을 태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 뉴스를 접하셨다면 아시다시피 인천과 제주항로에 투입되었고 인천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에서 침몰하게 됩니다. 



2. 세월호의 침몰원인



침몰사고가 일어난 직후부터 다양한 침몰원인이 나오고 있습니다. 변침설과 내부폭발설,구조변경설,암초충돌설,리더십부재설 등 많은 원인이 나타났는데요. 심지어는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설도 있습니다. 그만큼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지에 대한 확신이나 결론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생존자들과 관계자들의 증원과 여태까지 나온 자료들을 종합해볼때 변침설이 가장 유력한설이 아닐까 생각이듭니다. 사건이 발생한 16일에는 암초에 걸려서 침몰했다는 암초충돌설이 유력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그지역은 암초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곳으로 알려져서 암초충돌설은 현재 없어진 상태입니다. 실제로 해경에서도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서 항로를 무리하게 변경하다가 침몰했다고 잠정결론을 지은상태입니다. 


변침설에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빠른속도로 항해중에 무리하게 항로를 이동하려고 한건데 예를들어서 빠르게 달릴때 갑자기 90도로 꺾어서 가려고하면 안되는것을 생각해보시면 될것같습니다. 아니면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릴때 핸들을 꺾는다면?이라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겁니다. 이처럼 빠른속도로 항해를하던중에 무리하게 꺾으면서 침몰하게 된것이라고 해석한것이 변침설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뒷받치할만한 근거도있는데 원래는 600명정원이던(일본에서 운행할당시) 세월호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300명을 추가인원을 수용할수있도록 개조가 되었습니다. 개조가되면 단순히 운항하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번처럼 무리한 변침을 할경우에는 충분히 문제가 되었을거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침몰이 된상태라면 무게가 더욱 늘어났기때문에 침몰속도가 빨라져서 피할 수 있는 속도가 단축되고 + 구조할 수 있는 시간도 없어지게 되는거죠. 결국에는 개조된것 또한 침몰원인 및 침몰 이후의 상황을 안좋게 만들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무리해서 항로를 변경했냐는 거에대 한 추측이 또 난무하고 있는데 기상악화로 출발시간이 너무 늦여져서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지름길로 가기위해서 그랬다는설과 선장이 탈출 후 인터뷰중에 5만원짜리 1~2장과 1만원짜리 10장정도 돈을 말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볼때 고스톱같은 도박을하고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실제로 사진이 존재하지는 않는걸로 봐서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사실이라고하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3. 세월호 선장의 대처 및 행동



1. 가만히 있어라 or 그자리에 있어라

첫 조난신고 당시에 배는 20도정도 기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부터 대처를 잘했다면 모두 살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장의 지시는 선실이 안전하니 선실내에 있어라, 그자리에 가만히 있어라라는 안내방송만 반복하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미 배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라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사람이라도 뛰어내리라고 하는게 맞는 지시가 아니였을까요? 이미 40~50도 기울어지고 물이 차오르는상태에서 대피하라고하면 움직일 수 없는상황에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됬을까요.. 초기 대응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입니다. 이부분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2.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한 후 탈출

국민들이 분노하게 된 원인은 여기에있습니다. 단순히 사망자가 많이 났다고해서 분노한것이 아닙니다. 배를 지켜야할 선장이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는말을 되풀이 한 후 혼자 탈출을 한겁니다.. 이쯤되면 이게 고의로 죽일려고 작정을 한건지 의심까지 듭니다. 위에 하얀색 알처럼보이는게 펼쳐지면 10명정도 구조가 가능한 보트로 변신한다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합니다. 작동되는 2개중의 하나를 선장이 타고갔다는 설이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그건 아닌듯보이구요. 저렇게 빠져나가는거보니 애초에 구명보트를 펼칠생각도 없어보입니다.. 저거펴지면 다 살았어요.



[사진출처 : 뉴스와이]


3. 인터뷰 도중 나는 승무원이라 아는것이 없다.(탈출 이후)

선장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터뷰가 귀찮은지 본인은 선장이 아닌척 행세를 합니다. 본인은 살았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것인지.. 갈수록 화를 내게 합니다.

기사제목 "승객인척"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903809




4. 인터뷰중에  돈을 말림 (탈출 이후)

분노폭발 게이지 상승하는 부분입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가는데 본인은 5만원권과 1만원권의 돈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선장과 인터뷰를 하던중의 돈을 말리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인데 돈을 찢어버려도 쉬언찮을 판국에 태평하게 온돌에 돈을 말리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이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기사내용 : http://news.donga.com/Main/3/all/20140417/62848360/3



모든행동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선장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할 수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상이나 기사들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위에 말한것들이 대부분 사실이였다는것을 알아버렸거든요. 황당하고 화가납니다. 너무나 어린친구들이 너무나 많이 사망했습니다.



4. 위기의 순간의 영웅들


[이미지출처 : YTN ]


세월호에 타고있던 선원들은 모두 22명이였습니다. 그중에 20명은 침몰전에 탈출에 성공했고 2명만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승객들의 안전을 지켜야할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일찌감치 빠져나간 반면에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지못한 학생들을 위해서 4층에올라가서 구명조끼를 구한후 3층 학생들에게 건네면서 너희들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라는 말을 남기지만 미쳐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박지영씨의 이러한 사연은 다른선원들이 모두 살았다는점에서 시사하는바가 큽니다. 물론 선원들의 목숨역시 중요하지만 본인이 배안의 승무원이라는것을 망각하고 탈출부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선장부터 1등으로 빠져나오는데.. 승무원들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승객을 구조하고 신경쓴건 박지영씨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미지출처 : YTN ]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은 탈출할기회가 있었지만 본인이 입고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넨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친구를 구하려고 몸을 던졌다가 숨진것으로 알려져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다른친구들도 소중했겠지만 본인의 목숨부터 챙기는게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진정 본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하는건 선장이 아니라 이 어린학생이 아니였을까요? 정차웅군이 살려준 친구는 죄책감이 많이들고 힘도들겠지만 친구가 살려준목숨 다시태어났다고 생각하고 훗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미지출처 : MBC ] 


탑승객 20여명을 구한것으로 알려져서 화제가된 김홍경씨입니다. 김홍경씨는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소방호스를 이용해서 만든 줄을통해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만약 김홍경씨가 20명을 구하지 못했다고한다면 실종자는 20명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20명이 더 늘어난다면.. 실종자가 거의 300명의 육박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승무원 박지영씨가 구한 사람들과 합하면 정말로 300명이 넘었을 수도 있겠네요..) 20명을 구하고도 더 구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고하는 인터뷰를 보니 제마음도 짠하더군요.. 과연 내가 저 상황에 온다면 나는 한명이라도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김홍경씨는 많은 학생들을 구한 후 가장 마지막에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감동을 주었습니다.



5. 해외에서의 유명 침몰 사고

해외에서도 배가 침몰한 사건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주 유명한 타이타닉호와 이탈리아의 콩코르디아호의 사례를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두사례 역시 유명하기도하지만 세월호와 같은 인재라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다만 두사례의 선장의 의지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선장이 배와 <승객들을 지키는행동>과 <승객들을 버리는행동>의 차이와 최후를 확인 할수 있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건(1912년)은 이미 영화를 봐서 아시겠지만 타이타닉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례가 없을정도로 엄청난 초호화 여객선입니다. 침몰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빙산과의 충돌로인해서 침몰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충돌당시 타이타닉호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고 피할겨를도 없이 부딪히게 됩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했을때에도 많은 영웅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구명보트에 탈 수 있었지만 배를 끝까지 지킨 존스미스 선장과 완전히 침몰하기 10분전까지 바이올린연주를한 연주대가 기억에 남습니다. 위의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콩코르디아호 침몰사건(2012년)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유명 침몰사고 입니다. 이탈리아의 초호화 여객선으로 물 위에 떠있는 특급 호텔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배입니다. 2005년 건조되었는데 자그마치 6000억원이 들었고 객실이 무려 1500개 였다고하니 상상이나 가시나요?

타이타닉의 선장과는 다르게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을 감행 합니다. 당시에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탈출을하다가 걸린 스케티노 선장은 다시 돌아가라는 선원의 말을 거부한채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결국에는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2000년이넘는 형을 받으면서 승객을버린 선장의 최후를 맞이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6. 우리나라에서의 또다른 침몰사고


사실 세월호 침몰사건 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두차례의 큰 침몰사례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이 안되던 시절이라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해훼리호와 남영호의 침몰사건입니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건(1993년)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침몰한 사고로 무려 292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섬지역 사람들이 였으며 이사건은 승객을 너무 많이 태워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고 였습니다. 더군다나 여객선이 절대로 출항해서는 안되는 악천후의 조건이였지만 그대로 출항해서 피해를 키운 사례입니다. 재미난사실은 이때의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남영호 침몰사건(1970년)은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사건 당일 1970년 12월 14일에는 승객 338명과 감귤을 싣고 제주에서 부산으로 항해중이 였습니다. 1970년당시면 엄청나게 못살던시절인데.. 인명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졌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승객의 대부분이 사망하였으며 서해훼리호 침몰때와 마찬가지로 무리한 인원과 물품을 실은것이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선 두사례와 세월호를 비교해보면 전형적인 인재임이 드러납니다. 무언가 무리하게 초과해서 실었다거나 무리하게 출항을 했다거나 무리하게 속도를 낸 케이스입니다. 배의 침몰사고는 대부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재수없게 암초가 걸리는 상황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와 어리석음이 동반됬기에 발생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7. 글을 마치며...


세월호 사고영상 [제목: 죽음의 안내방송] (빡침주의) 


단원고의 교감선생님이 목숨을 끊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수학여행을 추진해서 죄책감을 이기지못하고 끝내 자살을 한건데요.. 생명의 귀중함은 모두 같지만 죽지않아도 되는사람, 혹은 살아야 할사람들이 죽은것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미래를 책임져야할 학생들은 그렇게.. 영영 돌아올 수없는 배를타고야 말았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은 앞선 한국과 외국에서의 선례가 있음에도 무리하게 항해를 하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원래 세월호를 운항하는 1급항해사의 휴가라는 요인도 있었지만 이번에 대리로 몰았던 2급 항해사 선장역시 경력이 많아 문제가 될건 없었습니다. 본인의 실력을 너무 간과한 나머지 넘지못할 선을 넘게 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고보니 사건당시 시각에는 본인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경력이4개월밖에 되지 않은 3급항해사에게 운전을 맡겼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의 존스미스선장은 탈출이 가능했지만 배와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배를 침몰시킨것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다만 배를 침몰시킨것은 선장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가지의 문제가 있었겠죠. 3등항해사의 조작미숙문제나 배를개조한문제 그날의 기상상황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을겁니다. 마침 그날의 운도 최악까지 겹쳐서 배가 침몰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침몰이후에 대처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식으로만 하지 않았다면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분노하는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것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겁니다. 오히려 많은 인원을 살렸다면 위의 언급한 영웅이 되셨을지도 모르죠.


선원법에는 선장은 승객이 모두 내릴때까지 배에 남아있어야 하며, 위급 상황에서는 필요한 조치를 다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실수 혹은 배의 이상이 생겨서 침몰했다고 쳐도 승객들을 그렇게 배에 가둬 놓고 본인혼자 살겠다고 가장먼저 탈출한것이 과연 여객선의 선장이라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네요. 18살 고등학생.. 꽃다운 나이의 수백명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먼저 살고싶었는지.. 선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것은 분명히 법의 심판을 받을겁니다. 또한 법의 심판 이외에도 희생자 가족들이 보내는 원망과 국민들의 분노에대한 댓가도 분명히 치를것이구요. 꼭 오래오래 사셔서 많은 미움과 원망을 한몸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선장님이 지시한사항인 "가만히 있어라"는 잊지못할 희대의 명언일겁니다.


마지막으로 선장님이 승객을 버리고 도망치는 상황을 잘 나타낸 영화제목이 떠오릅니다. 영화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제목이 어찌 그럴듯하네요..세월호 선장의 "나홀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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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비밀방문자
    2014/05/07 22:3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2014/05/11 05:59
    OBAMA’S GIFT TO KOREA SHIPDISASTER
    Before sitting at a table across from President Ms. Park, Mr. Obama thanked the South Korean leader for making time to see him even though the effort to find the missing passengers was continuing.
    “I just wanted to express on behalf of the American people our deepest sympathies for the incredible and tragic loss that’s taken place,” Then Mr. Obama asked his delegation to observe a moment of silence.
    Mr. Obama presented Ms. Park with an American flag that he said had flown over the White House on April 16, the day the ferry, the Sewol, sank off the southwest coast of the country.
    Ms. Park thanked Mr. Obama, saying “the Korean people draw great strength and courage from your kindness.”
    In addition to the flag to honor the ferry victims, Mr. Obama presented a magnolia tree from the White House to Danwon High School in Ansan, south of Seoul, which ” lost dozens of students in the accident.”
    Magnolias, the president said, symbolize beauty and renewal — “the same qualities embodied by all those students.”
    Korean people in tragedy are greatly honored by the president and the American citizens.
    My wife said that her friend Dr. Kee Ok Cho was so upset when she read the NY time’s misreport of the disaster victims as “only dozens of students” as the President indicated.
    Evidently someone seemed to have misinformed President Obama on the scale of the disaster as if the disaster victims were as “only dozens,” although the victims were more than 30 dozens. Such large scale victims hurt so many hearts in Korea as well as over the world.
    I checked Random House dictionary to understand the term “dozens” It suggested,
    “Dozen, Pl. dozens, as after a numeral.” It suggested proper, appeared better than Webster’s.
    In this case the President should have said “more than 30 dozens of the victims.”
    If anyone really so misinformed the President regrettably, the Victims were so belittled as such as in the senseless advises
    The Korean prime minister resigned for the tragic occasion.
    1. The vice-principal of a South Korean high school who accompanied hundreds of pupils on a ferry that capsized has committed suicide, on Friday, as hopes faded of finding any of the 274 missing alive. Images for korean school teacher kang min kyu


    One rescuer lost his life for others.
    Soon the Korean president issued her apologies for tragic accident.
    Needless to say, the tragedy is the reflections of a moral decay of the many responsible leaders for the incidents indicating a deviant business culture, which alarmed the Koreans to wakeup.
    More surprisingly, the operators, Yoo family closely related with the ministry of a Baptist church.
    Let us pray for a peace of the victims and for the restoration of Christian mo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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